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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목화 만든 지 어느새 30년 "난 여전히 아마추어"
2017-06-14 16:04:17 hit 88

 

 

극단목화 대학로에 둥지를 틀었다. 마로니에 공원 직전에서 우회전해 들어가면 나타나는 유명한 피자집의 지하실과 2층이다. 연습실로 사용 중인 지하실의 문을 빼꼼히 열자 <자전거> 연습이 한창이다. 한국전쟁 죽은 아버지,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해 살아야 했던 문둥이 일가의 삶이 오태석(74) 특유의 스타일로 펼쳐지는 연극이다.  

사실과 환상,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자유자재로 흘러가는 연극은 서구적 스타일에 대한 일종의 항변이었거니와, ‘오태석 연극 내용과 형식을 보여주는 이정표와도 같은 작품이다. 올해로 창단 30주년을 맞은목화 바로 <자전거> 기념작으로 내놨다.  

극단목화 창립자, 작가 연출가 오태석은 얼굴 근육을 완전히 허물어뜨리며 하하 웃었다. 일흔넷의 그가 동승(童僧)처럼 웃으며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것만 마무리하고요라고 말했다. 이어서 10분간, 그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손을 내저으며 배우들의 동선과 호흡을 지시했다. 때로는 손가락을 딱딱 튀기며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른 , 2 사무실에서 인터뷰가 이뤄졌다.  

 

6·25 배경 30 작품 올리는  
여전히치유되지 않은 상처때문 

 

- <자전거> 1983년에 초연됐지요. 20 04년에도 공연된 적이 있으니 10 만의 재공연인 셈입니다. 선생님의 연극에는 한국전쟁이라는 원체험이 깔려 있는 경우가 아주 많은데 <자전거> 특히 그렇습니다

 

제가 열한 때였어요. 나이는 호기심이 가장 크고, 모든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때잖아요. 평생 잊을 없는 장면들이 굉장히 많아요. 피란을 가다가 이리역 광장에 도착했는데, 아기를 안은 젊은 아낙네, 아마 20 초반이나 됐을 텐데, 엄마 품에서 아기가 죽었어요. 이미 오래됐어. 아기 몸에서 구더기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구더기가 엄마의 몸과 머리카락으로 기어오르고 있었어요. 한데 엄마가 아기를 안은 깍지 손을 절대 풀지를 않는 겁니다. 장정 서너 명이 달라붙어서 손을 풀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막무가내로 아기와 덩어리였어요. 그런 어떻게 잊겠어요. 그런 기억이 너무 많아요. 집단학살 당해서 암매장된 시신들을 꺼낼 냄새…, 그것도 잊을 없어요. 그런 기억에 대한 어떤 전달자의 의식 같은 것이 나한테 있나 봐요.”  

 

그는 1989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의 이야기도 꺼냈다. “우리도 5년이나 10년쯤 있으면 저렇게 되겠구나 싶었어요. 한데 25년이 지났잖아요. 우리는 뭔가 잘못 살고 있는 거죠.”  

 

- 극단목화 마흔네 살에 창단하셨습니다. 이른바동인제 극단으로 창단하셨는데, 연극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으로 이끌어가는 극단을 뜻하겠지요. 그래서 공유하는연극 정신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습니까. 당시 동인제 극단으로는 산하, 실험, 현대, 자유 등의 극단이 있었죠. ‘목화 정신은 무엇이었는지요

 

제가 1980년에 뉴욕에 갔다왔어요. 거기서 발견한 것이, 우리가 다른 빈곤해도 문화적으로는 굉장히 부자구나, 라는 것이었어요. 록펠러보다 부자더라고. 뉴욕 브로드웨이 연극들을 보다가 그걸 발견한 거죠. 조상들이 남겨준 볼거리가 대단하다는 . 그래서 7개월 만에 돌아왔어요. 빨리 우리 창고를 열고 뭔가 만들려고. 그것이 <자전거>예요. 그때 통행금지가 해제됐어요. 저는 마흔세 살까지 통금이라는 제한 속에서 살았는데, 그게 풀리면서 저도 뭔가 열린 거죠. 제가 알고 있는 우리의 고통은 6·25라는 상처인데, 그게 과연 치유됐는지 묻고 싶었나 봐요. 한데 그런 기미가 지금까지도 없단 말이죠. 우리는 지금도 고통 속에서 점점 나빠지며 살고 있잖아요. ‘목화 창단하면서 가졌던 마음? 뉴욕에서 느꼈던 바로 그것, ‘우리의 볼거리 풀어놓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우리말이 관객과 어떻게 하면 빨리 만날 있는가, 말의 흡입력과 침투력을 고민한 거죠.”  

 

오태석은 소문난 눌변이다. 그의 연극이 그렇듯이, 그의 말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줄거리를 이루기보다는 심상이 가는 대로 흘러간다. 다시 말해 즉흥적이다. 그래서 종종 엇길로 빠지지만 엇나감조차도 오태석 스타일이다. 극단목화 지난 30년간 숱한 명배우들을 배출한배우의 산실 손꼽혀왔거니와, 오태석이 생각하는 배우의 생명은언어를 구사하는 이고 언어는 언제나 마음을 드러내 전하는 일이다.  

 

우리 선조들은 생략, 비약, 의외성, 즉흥성 이걸 구사했어요. 우리 말은 그런 언어입니다.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연극의 사명이죠. 연극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은 40%여야 해요. 나머지는 관객의 몫이죠. 연출가는 두부와 생선 내놓고, 파와 무를 깨끗하게 씻고, 된장·간장도 내놓고…, 다음에 음식을 만드는 것은 관객에게 맡겨야죠.” 

 

극단목화 사무실에는 작가 오태석의 희곡집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모두 16권이다. “50여년간 많이 쓰셨군요라고 말하자 오태석은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말을 인용했다. “ 사람이 좋은 생각으로 나쁜 글만 쓴다고 자기 작품을 자평했어요. 나도 그래요. 저게 쓸데없는 건데.” 이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천한 놈입니다. 끊임없이 아마추어였고요. 극단을 30년간 해오면서 해도 중단할 없었어요. 동인제 극단이 갖는 힘이 뭐겠어요. 하루 종일 연극만 생각한다는 것이죠. 연극은 허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연극쟁이는 허구 속에 최대한 많은 시간 머물러 있어야 해요. 그게 가능한 것이 동인제 극단이죠. 허겁지겁 써왔어요. 내가 스톱하면 단원들이 흔들리니까. 나는 우리 아이들을허구라는 집에서 살게 해줘야 하거든요.” 

 

목화 단원은 현재 25명이다. ‘아버지 오태석 단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별명으로 기억한다. “ 작은 애는 눈작이, 얼굴 검으면 시꺼미, 영화과 나온 애는 영화라고 부른다 했다. 연극 <자전거> 5일부터 22일까지, 대학로 스타시티 예술공간 SM에서 공연된다

 

 

 

경향신문 문학수 기자 sachimo@kyunghyang.com

2014-01-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012127055&code=960313